로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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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저와 나는 마이클 무어가 제작하고 출연한 1989년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제너럴 모터스(GM)의 플린트 공장 폐쇄와 그로 인한 미시간주 플린트 시의 경제적 몰락을 다루며, 무어가 GM 회장 로저 스미스를 인터뷰하려는 시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는 플린트 시민들의 고통, 실패한 도시 부흥 정책, 그리고 GM의 결정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비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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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와 나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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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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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저 & 미 |
원제 | Roger & Me |
감독 | 마이클 무어 |
제작자 | 마이클 무어 |
각본 | 마이클 무어 |
출연 | 마이클 무어 로저 B. 스미스 자넷 라우치 론다 브리튼 프레드 로스 로널드 레이건 밥 유뱅크스 |
촬영 | 크리스 비버 존 프루삭 케빈 래퍼티 브루스 셰머 |
편집 | 제니퍼 비먼 웬디 스탠즐러 |
내레이터 | 마이클 무어 |
스튜디오 | 도그 잇 도그 필름스 |
배급사 | 워너 브라더스 |
개봉일 | 1989년 12월 20일 |
상영 시간 | 90분 |
제작 국가 | 미국 |
언어 | 영어 |
제작비 | 14만 달러 |
흥행 수입 | 770만 달러 |
일본 정보 | |
일본 개봉일 | 1990년 6월 30일 |
일본 상영 시간 | 91분 |
추가 정보 | |
관련 서적 | 버려진 도시: 디산업화에 직면한 미시간주 플린트 |
국가 영화 등록 | 2013년 미국 의회도서관 국가 영화 등록 |
2. 제작 배경
마이클 무어는 잡지 편집장 자리에서 해고된 후, 고향 미시간주 플린트시의 경제적 어려움에 주목하여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심했다. 1984년 당시 무어는 영화 제작 경험이 없었고, 자금도 부족했다. 그는 ''마더 존스''를 상대로 부당 해고 소송에서 승소하여 160000USD를 받았다. 또한 집을 담보로 잡고 소유물 대부분을 팔았으며, 200000USD 예산 마련을 위해 3년간 매주 빙고 게임을 열었다.[9] 그는 지역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 영화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결국 무어는 여러 재단과 랄프 네이더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10]
''로저와 나''는 ''제너럴 모터스가 어떻게 미시간주 플린트를 파괴했는지에 대한 유머러스한 시선''이라는 작업 제목으로 촬영되었다.[12] 예고편을 본 무어와 제작진은 대량 실업 묘사가 주류 관객에게 너무 우울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유머러스한 방향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9] 제작은 플린트 파업 50주년인 1987년 2월 11일에 시작되었으며, 1988년 여름 60일 동안 촬영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무어는 미시간 대학교 비디오나 도시 홍보 영화를 촬영하는 척하며 인터뷰를 얻었고, 1989년 8월에 제작이 마무리되었다.[9][10]
2. 1. 초기 구상
무어는 잡지 ''마더 존스'' 편집장 자리에서 해고된 후, 제너럴 모터스의 정리해고로 인해 탈산업화로 고통받던 고향 미시간주 플린트로 돌아가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9] 처음에는 자신의 노동자 계급 가족과 찰스 스튜어트 모트의 상류층 가족을 대비시키는 내용으로 기획했으나, 이후 미국 자동차 산업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었다.[9] 무어는 이 영화를 GM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도시 전체에서 가장 큰 수입원을 제거하도록 허용한 경제 정책과 사회적 태도를 비판하는 개인적인 성명으로 의도했다.[9][10]2. 2. 자금 조달
무어는 영화 제작 경험과 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1984년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심했다. 그는 마더 존스를 상대로 한 부당 해고 소송에서 승소하여 160000USD를 받았다.[9] 그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잡고, 소유물 대부분을 팔았고, 3년간 매주 빙고 게임을 열어 영화 제작 예산 200000USD의 나머지를 마련했다.[9] J. 로데릭 맥아더 재단, 채널 4 텔레비전 공사, 미시간 예술위원회, 랄프 네이더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10] 맥키낵 공공 정책 센터는 영화에 5000USD를 기부했지만 나중에 환불을 요청했다.[10] 네이더 역시 그가 제작에 기부한 30000USD를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11]2. 3. 제작진
Christopher Beaver영어, Anne Bohlen영어, Judy Irving영어, Kevin Rafferty영어 등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의 도움을 받았다.[13] 무어는 이전에 볼렌과 래퍼티의 영화 ''피스 오브 더 페이스''에 참여했었다.[14][15] 제작진행은 로드 벌리슨(Rod Burleson), 앤 보렌, 로버트 윌리엄(Robert Wilhelm)이 참여했고, 음향은 주디 어빙이 담당했다.[9]3. 영화 줄거리 (시놉시스)
영화는 마이클 무어가 자신의 가족사와 제너럴 모터스(GM) 직원으로서 아버지의 삶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무어는 8mm 홈 비디오를 통해 자신을 아일랜드계 미국인 로마 가톨릭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아버지는 GM에서 AC 스파크 플러그를 조립하는 노동자였다고 설명한다. 무어는 GM이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정의했으며, 회사가 도시의 주요 경제 및 사회적 중심지였다고 말한다. 플린트 파업으로 전미자동차노동조합이 탄생한 곳이 플린트라는 점을 지적하며, 자신의 영웅은 GM 공장의 억압적인 삶에서 벗어난 밥 유뱅크스 등 플린트 출신들이었다고 밝힌다. 유뱅크스는 나중에 영화에서 인터뷰를 받는데, 이 과정에서 유대인 여성에 대한 저속한 농담을 한다.[6]
3. 1. GM의 정리해고와 플린트 시의 몰락
무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마더 존스'' 잡지에 고용되어 공장 노동자 생활을 피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플린트로 돌아온다. 1986년, 제너럴 모터스(GM)는 수천 명의 플린트 자동차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이들의 일자리를 멕시코로 아웃소싱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이는 GM이 기록적인 이익을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졌다.[6]TV 기자로 변장한 무어는 플린트의 자동차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GM 회장 로저 B. 스미스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무어는 스미스에게 플린트 공장 폐쇄에 대해 직접 따지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선다. 디트로이트의 GM 본사에서 여러 차례 방문을 시도하지만 보안에 의해 저지당한다. 그로스 포인트 요트 클럽과 디트로이트 애슬레틱 클럽에서도 스미스를 찾지만, 만나지 못하거나 쫓겨난다.[6]
이후 무어는 공장 폐쇄가 친구들에게 미치는 감정적인 영향을 살펴본다. 조립 라인에서 신경 쇠약을 겪고 정신 건강 시설에 있는 자동차 노동자 벤 햄퍼를 인터뷰한다. 또한 플린트의 어려움에 대해 계급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부유한 교외 지역 미시간주 그랜드 블랑 주민들과 대화한다.[6]
인구 15만 명 중 3만 명이 GM 직원이던 플린트는 급속도로 쇠퇴했다. 활기 넘치던 도시는 고스트 타운이 되었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살며, 생계를 위해 식용 토끼를 뜰에서 대량 사육해 파는 여성도 나타났다.[7][8]
3. 2. 로저 스미스 회장과의 만남 시도
무어는 제너럴 모터스의 로저 스미스 회장에게 플린트 공장 폐쇄에 대해 직접 따지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섰다. 그는 디트로이트의 GM 본사를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건물 보안에 의해 번번이 저지당했다.[6] 영화에서 무어는 그로스 포인트 요트 클럽과 디트로이트 애슬레틱 클럽에서도 스미스를 찾으려 했지만, 스미스는 없거나 직원 및 보안 요원에게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6]무어는 주주 자격으로 연례 GM 주주 총회에 참석했다.[7] 그러나 발언 기회를 얻어 이사회에 불만을 제기하려 하자, 스미스는 무어를 알아보고 즉시 제지하며 회의를 중단시켰다.[7]
3. 3. 플린트 시민들의 고통
무어는 해고된 노동자, 신경 쇠약을 겪는 노동자, 부유층 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플린트 시의 현실을 조명한다. 그는 조립 라인에서 신경 쇠약을 겪고 정신 건강 시설에 있는 자동차 노동자 벤 햄퍼를 인터뷰한다.[6] 또한 플린트의 어려움에 대해 계급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부유한 교외 지역 미시간주 그랜드 블랑의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다.전 페미니스트 라디오 진행자 자넷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암웨이에 세일즈우먼으로 합류한다. 또 다른 주민인 론다 브리튼은 "애완 동물 또는 고기"를 위해 토끼를 판매한다.[7][8]
3. 4. 실패한 도시 부흥 정책
무어는 관광객을 플린트로 유치하기 위한 정책들이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플린트 컨벤션 및 방문자 사무국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하얏트 리젠시 호텔, 페스티벌 마켓인 워터 스트리트 파빌리온, 오토월드 건설을 허용했다.[6]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하얏트는 파산 신청 후 매물로 나왔고, 워터 스트리트 파빌리온은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으며, 오토월드는 개장 6개월 만에 폐장했다.[6]3. 5. 유명 인사들의 등장
팻 분과 애니타 브라이언트는 GM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는데, 팻 분은 무어에게 스미스가 "낙관적이고 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라고 말했다.[7] 그는 암웨이를 통한 빈곤 탈출을 주장하기도 했다.3. 6. 범죄율 증가와 사회 문제
이 과정에서 플린트의 범죄율은 치솟아 총격전과 살인이 훨씬 더 흔해졌다. 범죄가 만연하여 ABC 뉴스의 ''나이트라인''이 공장 폐쇄에 대한 생방송 보도를 하려고 할 때 누군가 네트워크의 밴(케이블 포함)을 훔쳐 방송이 갑자기 중단되기도 했다.[7] 카운티 교도소는 수감자 정원에 도달했고, 과밀로 인해 두 번째 교도소가 건설되었다. 머니 잡지는 플린트에서 사는 것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이 도시를 미국에서 살기에 최악의 장소로 선정했다.[7]3. 7. 로저 스미스와의 대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무어는 마침내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로저 스미스 회장의 연례 1988년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그와 대면한다.[7] 스미스가 휴가 시즌 동안 관대함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로스 대리는 또 다른 가족을 집에서 쫓아낸다. 스미스의 연설 후, 무어는 스미스를 쫓아가 멀리서 그에게 해고 문제를 언급한다.[7]4. 등장인물
마이클 무어는 이 영화의 주연이자 감독이다.[1]
4. 1. 주연
4. 2. 조연
5. 비판과 논란
이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일부에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 비유될 정도로 호평을 받기도 했으며, 진 시스켈과 로저 이버트는 1989년 최고의 영화 10편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18][19][20]
하지만, 폴린 케일은 영화가 GM의 공장 폐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과장하고, 실제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묘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천박하고 가벼운 곤조 선동"이라고 비판했다.[21] 영화 제작자 에밀 드 안토니오 역시 이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22] 이러한 비판에 대해 로저 이버트는 무어가 풍자 작가와 아이러니스트들이 오랫동안 해왔던 방식을 사용해 자신의 요점을 전달했다고 옹호했다.[23]
2007년에는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 홍보 기간 동안 ''매뉴팩처링 디센트: 언커버링 마이클 무어''라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었는데, 여기에는 무어와 스미스가 1987년 GM 주주총회에서 나눈 질의응답이 담긴 클립이 포함되어 있었다. 무어는 이 만남을 인정했지만, 영화 작업 시작 전의 일이며 영화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24] 2014년, 영화 촬영 감독 브루스 셔머는 인터뷰에서 무어가 스미스에게 플린트의 계획과 일자리 감소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스미스는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고 회상했다.[9]
평론가 빌리 스티븐슨은 이 영화를 무어의 "가장 놀라운" 작품으로 묘사하며, 영화 제작과 노동을 융합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반면 유뱅크스는 무어를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아닌 "선동가"라고 묘사했다.[25][26]
한편, GM은 2009년 6월에 파산을 신청했는데, 이에 대해 마이클 무어는 "기쁨으로 가득하다"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5. 1. 영화의 진실성 논란
GM은 영화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미스의 유머러스하고 시대착오적인 묘사로 인해 내부에서 널리 인기를 얻었다. 영화 개봉 당시 GM은 시장 점유율의 8%를 잃었고 상당한 재정적 손실을 입어 많은 직원과 임원들이 스미스의 리더십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영화가 개봉될 당시 플린트는 실업률, 폭력 범죄, 지방 정부의 예산 적자가 감소하면서 약간의 경제 회복을 보이고 있었다. 그 결과, 많은 논평가들은 영화의 진실성을 의심하며 무어가 세부 사항을 조작하거나 과장했다고 비난했다.[9]
평생 플린트 지역 주민이자 개인 상해 변호사인 래리 스테코는 위대한 개츠비를 주제로 한 기금 모금 행사에서 플린트의 긍정적인 측면(예: 지역 발레단과 하키)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사람 조각상으로 분장시켜 촬영한 스테코는 영화에서 자신을 좋지 않게 묘사한 것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스테코는 무어와 워너 브라더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무어가 플린트 지역 PBS 계열사를 위한 홍보 영화를 제작한다고 자신에게 거짓으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영화의 삭제 장면을 검토한 후 배심원단은 스테코의 편을 들어 무어에게 6250USD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무어는 명예 훼손 혐의가 기각되고 합의금이 요구했던 50000USD보다 적었기 때문에 이 결정에 만족감을 표했다.[10]
5. 2. 폴린 케일의 비판
폴린 케일은 이 영화가 GM의 공장 폐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과장했으며, 플린트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묘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케일은 이 영화를 "천박하고 가벼우며, 웃음을 자아내게 해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곤조 선동"이라고 칭했다. 케일이 제기한 비판 중 하나는 영화 마지막 부분의 퇴거 장면이 스미스의 연설과는 다른 날에 일어났지만, 감정적인 효과를 위해 두 사건을 교차 편집했다는 것이다.[21]5. 3. 에밀 드 안토니오의 비판
영화 제작자 에밀 드 안토니오도 이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22]5. 4. 로저 이버트의 옹호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과장과 부정확성으로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며, 무어가 "풍자 작가와 아이러니스트들이 오랫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소재를 자유롭게 활용했고, 빈정거림과 능숙한 타이밍으로 자신의 요점을 전달했다"고 옹호했다.[23]6. 영화의 영향과 유산
GM영어의 대규모 정리해고와 기업 윤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1] 마이클 무어는 이 영화를 통해 고향 플린트의 위기와 GM영어의 "합리화 정책"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1]
영화 개봉 당시 GM은 시장 점유율 하락과 재정적 손실을 겪고 있었고,[1] 미시간 주 플린트는 GM 공장 폐쇄와 구조 조정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1] 이후 GM은 2009년 6월에 파산법을 신청하여 경영 부실에 빠졌다.[1]
영화 개봉 이후 플린트 시는 약간의 경제 회복을 보였지만,[1] 영화에서 묘사된 암울한 상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1]
무어는 1992년 PBS 시리즈인 ''P.O.V.''에서 ''Pets or Meat: The Return to Flint''(1992)라는 후속 단편 다큐멘터리를 통해 ''로저와 나'' 개봉 2년 후 플린트의 변화를 조명했다.[10] 이후에도 무어는 ''The Big One'',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 9/11'', ''화씨 11/9'',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 등에서 플린트와 그 경제적 쇠퇴를 다루었다.[5]
2013년, 이 영화는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아 의회 도서관의 국립 영화 보존 등기소에 보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5]
6. 1. 사회적 영향
GM영어의 대규모 정리해고와 기업 윤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1] 마이클 무어는 고향 플린트가 위기에 처했음을 알고 GM영어의 "합리화 정책"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1]인구 15만 명 중 3만 명이 GM영어 직원이던 플린트는 급속도로 고스트 타운화되었고,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식용 토끼를 뜰에서 대량으로 사육해 팔기도 했다.[1] 자동차 테마파크 건설 등 GM영어 발상지 도시 부흥 작전도 실패로 돌아갔다.[1]
원래 평범한 중산층이었지만 빈곤층으로 전락한 시민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극소수의 부유층 시민들은 호화 저택에서 파티를 열고, 빈곤층 시민들을 "살아있는 오브제" 역할의 아르바이트로 고용하기도 했다.[1] 초대객 중에는 GM영어의 플린트 철수 및 대량 해고를 산업 혁명에 비유하며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다.[1]
GM영어의 텔레비전 광고(TV-CM)를 통해 플린트 시민들에게 친숙했던 가수 팻 분조차 암웨이를 통한 빈곤 탈출을 주장하기 시작했다.[1]
GM영어은 2009년 6월에 파산법을 신청하여 경영 부실에 빠졌고, 마이클 무어는 "기쁨으로 가득하다"는 코멘트를 남겼다.[1]
6. 2. 경제적 영향
영화 개봉 당시 GM은 시장 점유율 하락과 재정적 손실을 겪고 있었다.[1] 미시간 주 플린트는 인구 15만 명 중 3만 명이 GM 직원이였으며, 부양 가족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시민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1] 공장 폐쇄와 구조 조정으로 인해 도시는 급속도로 고스트 타운화되었고, 많은 시민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1] 일부 시민들은 생계를 위해 식용 토끼를 사육해 팔기도 했다.[1]GM 발상지에 자동차 테마파크를 건설하는 등 도시 부흥 사업도 실패로 돌아갔다.[1] 한편, 소수의 부유층 시민들은 호화 파티를 열고 빈곤층 시민들을 "살아있는 오브제"로 고용하는 등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모습을 보였다.[1] 당시 유명 가수 팻 분 조차 암웨이를 통한 빈곤 탈출을 주장하는 상황이었다.[1]
이후 GM은 2009년 6월에 파산법을 신청하여 경영 부실에 빠졌다.[1]
6. 3. 플린트 시의 변화
영화 개봉 이후 플린트 시는 실업률과 범죄율이 감소하는 등 약간의 경제 회복을 보였다.[1] 그러나 이는 영화에서 묘사된 암울한 상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영화 속에서 플린트 시는 GM 공장 폐쇄로 인해 급격히 쇠퇴하는 도시로 그려진다.[1] 인구 15만 명 중 3만 명이 GM 직원이던 이 도시는[1] 공장 폐쇄 이후 활기를 잃고 고스트 타운처럼 변해갔다.[1] 갈 곳 없는영어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생활하거나, 생계를 위해 식용 토끼를 사육해 판매하기도 했다.[1] GM 발상지에 자동차 테마파크를 건설하는 등 도시 부흥 사업도 시도되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1]영화 속에서는 빈곤층으로 전락한 시민들의 고통과, 이를 외면하는 부유층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난다.[1] 일부 부유층 시민들은 호화 저택에서 파티를 열고, 빈곤층 시민들을 "살아있는 오브제" 역할로 고용하는 등 무신경한 모습을 보였다.[1] 심지어 어떤 초대 손님은 "플린트 시에서 GM 철수 및 고용 노동자 일괄 해고의 대결단은 18세기에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 혁명에 필적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며 뽐내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1]
6. 4. 후속 작품
무어는 1992년 PBS 시리즈인 ''P.O.V.''의 일환으로 이 영화를 처음으로 텔레비전에 방영하도록 허락했다. 이 방송에는 무어가 제작한 새로운 단편 다큐멘터리 ''Pets or Meat: The Return to Flint''(1992)가 포함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에필로그 역할을 했다.[10] 이 영화에서 무어는 ''로저와 나'' 개봉 2년 후 플린트를 방문하여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한다. 무어는 이후 영화인 ''The Big One'',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 9/11'', ''화씨 11/9'', 그리고 ''자본주의: 러브 스토리''에서도 플린트와 그 경제적 쇠퇴를 다시 다룬다.[5]6. 5. 국립 영화 보존 등기소 등재
2013년, 이 영화는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아 의회 도서관의 국립 영화 보존 등기소에 보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5]7. 수상 내역
Roger & Me영어는 개봉 이후 14개 이상의 상을 수상했다.
연도 | 영화제 – 단체 | 상 – 부문 |
---|---|---|
1989 | 토론토 국제 영화제 | 관객상[27] |
1989 | 밴쿠버 국제 영화제 | 가장 인기 있는 영화[28] |
1989 |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 | 최우수 다큐멘터리[29] |
1989 | 내셔널 보드 오브 리뷰 | 최우수 다큐멘터리[30] |
참조
[1]
웹사이트
"Roger & Me (15)"
https://www.bbfc.co.[...]
1990-01-23
[2]
웹사이트
Roger & Me, Box Office Information
https://www.the-numb[...]
The Numbers
2012-03-20
[3]
웹사이트
Roger & Me, Box Office Information
https://boxofficemoj[...]
2012-03-20
[4]
서적
A Town Abandoned: Flint, Michigan, Confronts Deindustrialization
https://books.google[...]
SUNY Press
[5]
간행물
Cinema with the Right Stuff Marks 2013 National Film Registry
https://www.loc.gov/[...]
Library of Congress
2013-12-19
[6]
서적
Michael Moore : A biography
https://archive.org/[...]
ECW Press
2024-02-19
[7]
웹사이트
"'Roger and Me' Revisited"
http://dogeatdog.mic[...]
1992-09-20
[8]
웹사이트
Filmmaker Returns to Flint
https://www.latimes.[...]
1992-09-27
[9]
웹사이트
Michael Moore and Flint: An oral history of 'Roger & Me' after 25 years
https://www.mlive.co[...]
2014-12-03
[10]
웹사이트
Roger & Me
https://catalog.afi.[...]
[11]
뉴스
Maker of Documentary That Attacks G.M. Alienates His Al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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